백합전도사
다섯번째 편지 본문
저는 고객님의 편지로 혼란함을 느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고객님의 편지 덕에 머릿속이 명쾌해졌으니, 이런 게 모순이란 건가 싶기도 합니다.
예전부터 저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두려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무언가 이뤄낼 자신도 없었고, 평가받는다는 건 악몽과도 같았지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언제나 무대의 가장 뒤에서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무대에서 어떠한 관계도 없으며, 대사도 치지 않는 엑스트라가 되고자 했지요.
하지만, 모두가 제 3자라 한다면 잠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요. 기어코 삶을 살아가려 하지 않는 이상 관객에 불과하다면,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면, 인류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조금은 마음을 놓고 여생을 살아가도 되는 거겠지요. 세상은 나를 평가하기 위해 탄생한 게 아니니.
당신이 누구든 이제는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물음들은 저를 판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죠. 당신은 그저 조금 독특한 고객일 뿐이니까요. 궁금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물어보셔도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고객님께서 말씀하셨던 '호기심'을 풀어드릴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고객님과의 편지 대화로 많은 걸 내려놓고 비로소 가벼워진 기분입니다. 답례는 답장과 고객님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하길 기원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감사를 전하며, 오늘도 우편배달부 조이 스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