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7일 편지 (13)
백합전도사
오랜만이야, 루루. 어쩌다 보니 나도 많이 늦어버렸네. 나는 그동안 아주 잘 지냈어! 뭐... 여러 일들이 있긴 했지만~ 내가 울적하다거나 그런 건 좀... 안 어울리는 일이 잖니? 늘 위풍당당하고 자신감 넘쳐야 하는 게 나니까. 아무래도 그런 게 나 다운 거니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나랑 같이 수영을 한다거나, 파티에 나간다거나 내 치어리딩... 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건 적어도 네가 날 멋진 사람으로 보고 있단 거니까. 근데 말이야, 루루. 아주 만약에 나한테 '결함'이 있다면 어떨 거 같니? 내가 인기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랬어도 넌 편지를 이어나갔을까?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었나? 뭐,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어. 있지도 않은 사실을 생각해 봐야 ..
안녕! 루루. 루루 네가 나랑 편지를 한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깨우친 거 같아서 다행이네! 뭐, 못 깨우치는 거야 말로 바보머저리인 거겠지만, 특별히 루루를 위해서 '잘 나간다'는 게 뭔지 알려줄게. 앞으로 있을 파티? 다 성공적일걸! 프롬 파티는 아직이지만 나는 늘 퀸이었으니까 루루도 꽤 주목받을 거라구. 하하! 편지 주고 받기가 끝나면 곧장 루루가 사는 동네로 갈 거야. 그래서 오늘 차 몰고 백화점도 다녀왔어! 나한테 걸맞는 옷을 고르느라고 애먹었지 뭐니? 옷 몇 벌은 건졌다지만. 참, 화장품, 신발, 고데기, 액세서리도 샀어. 용돈을 너무 쓰는 거 같단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왕이면 최상의 상태이고 싶단 말이야. 그래야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될 때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어디 백마 탄 왕자님 같..
안녕? 반가워. 루나 러셀? 꽤 귀여운 이름이네. 마음에 들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루루 너는 나한테 편지 보낸 걸 천운으로 생각하게 될 거야! 나 같은 친구가 있다는 건 그 누구라도 부러워할 일이니까! 애칭이 반려동물 같다고 했니? 나랑 함께면 그 별명은 세련되다 못해 '선구자' 대우받을걸? 왜냐면 나는 카퍼데일 고등학교 퀸, 낸시 컴버랜드니까!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지루했는지 몰라- 이 빌어먹을 촌구석에서 나랑 수준 맞는 애 찾는 게 어찌나 힘들던지! 루루 네가 나랑 친구 할 레벨이 되는 애였음 좋겠네. 여기는 여자 애들이든~ 남자 애들이든~ 내 추종자 노릇하기 바쁘지만~ 영 재미가 없단 말이야! 다 샌님들인 걸. 웩. (럭비부 애들 조차 못생겨서 충격 먹었어! 너희 학교엔 잘생긴 남자애들 없니..
안녕하십니까, 우편배달부 조이 스톤입니다. 아마 편지를 보내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듯합니다.... 만. 마지막을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저는 당분간 휴가를 떠나려 합니다. 우편배달부 업무를 맡은 지도 벌써 12년 차가 다 되어가는데도 휴가를 써본 적이 없더군요. 오죽하면, 동료직원들과 대표님께서 드디어 쉬는 것이냐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저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휴가 동안엔 여행을 떠나보려 합니다. 여행에 있어서 모든 과정이 즐겁진 않겠지요. 분명 난감하고, 성가시며, 수많은 문제와 사건을 마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해결하고 고민하는 순간순간이 저를 인격적으로 성장 시켜주리라 믿습니다. 노아 고객님께서도 이러한 인간..
첫 번째 편지서부터 느껴왔었지만, 고객님은 참 어려운 사람이십니다. 나쁜 의미라기보다는, 정말 말 그대로 어려운 문제집 같은 분이라고나 할까요? 새로움을 두려워하던 제 삶에 나아갈 기회를 주면서도 (의도한 바는 아니라 생각되지만요.) 이에 달갑지 않다 말씀하시니, 감사를 표하기에도 불쾌함을 표현하기도 마땅치 않지요. 하지만, 고객님을 향한 감정은 호감에 가깝다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고객님과 대화를 나누기 전에는... 늘 반복적인 업무를 하며, 삶을 살아감에 있어 전혀 물음표를 던지지 않았었습니다. 어쩌면 태어나서부터 물음표를 던질 기회를 얻은 적이 없었지요. 신분 상승과 상위 계급을 위해선 의사가 돼라 말씀하셨던 아버지도, 정치가가 되어서 권력을 휘두르라던 새어머니도, 제 서사와 결말을 정해놓으셨으니...
저는 고객님의 편지로 혼란함을 느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고객님의 편지 덕에 머릿속이 명쾌해졌으니, 이런 게 모순이란 건가 싶기도 합니다. 예전부터 저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두려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무언가 이뤄낼 자신도 없었고, 평가받는다는 건 악몽과도 같았지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언제나 무대의 가장 뒤에서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무대에서 어떠한 관계도 없으며, 대사도 치지 않는 엑스트라가 되고자 했지요. 하지만, 모두가 제 3자라 한다면 잠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요. 기어코 삶을 살아가려 하지 않는 이상 관객에 불과하다면,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면, 인류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조금은 마음을 놓고 여생을 살아가도 되는 거..
안녕하십니까! 조이 스톤입니다. 벌써 네 번째 인사를 드리는군요. 지난번에 편지를 보내고도, 고객님의 답장을 받고서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왜 추억에 대한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없었나. 정말 '불쾌'를 느꼈었나. 불쾌함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불쾌함 보다는... 겁이 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늘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정서적 교류 혹은 왕래 그 자체에 만족감을 느껴왔습니다. 언제나 제 3자의 입장이었지요. 고객님의 편지가 단순 문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저는 '제 3자 아니라 무대로 직접 뛰어들 자신이 있는가?'라는 선택지를 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선택지 결정은 내리지 못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땅도 우주도 거닐지 못하는 바람으로 살아왔던 탓일까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주소지 적는 법에 대해 여쭤보셨지요? 일반적으로는 편지봉투에 받는 사람 주소지를 적는답니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 받는 사람 주소지를 적지 않는다면 잘못된 방식... 이겠지만! '제'게 보낸다면 옳은 방식이라 보여집니다. 늘 쏘다니는 저에겐 마땅한 정착지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정착지가 없는 삶에 불만이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제겐 고양감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답니다. 고객님께서 말씀하셨듯, 저는 우편배달이란 이름의 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이 즐거운 여행길에 후회는 없는 거 같습니다. 오히려 지날 날의 후회로부터 저를 해방시켜주고 있단 생각이 드네요. ... ...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선 외람될 수 있으나, 몇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며 어..
노아 고객님께. 안녕하십니까! 우편배달부, 조이 스톤입니다. 따로 보낼 주소지가 쓰여있지 않아 편지를 열어보니 제게 편지를 써주셨더군요. 이메일이나 직접 방문이 아닌 편지 형식으로 문의를 주셨던 분은 없었던지라, 답변에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저희 볼트 우체국은 고객님의 질문엔 항상 귀를 기울이고 성심성의껏 답변드리려 노력하고 있답니다! 노아 고객님께서는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왜 해당 업무를 하는지 여쭤보셨지요. 첫째로 저는 우편배달부로써 각 지역에 편지, 택배등을 배송하는 업무를 맡고 있답니다. 둘째로 이 일을 함에는 먹고사는 문제도 있지만 고객님의 소중한 사연이 담긴 편지나 물건을 전달하는 일이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결점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답니다. 고..
앨리스 양, 잘 지내고 있나요? 꽤 오랜 시간이 지났군요. 앨리스 양을 마지막으로 본지가 벌써 까마득해요. 앨리스 양을 보고 싶기도 하지만, 앨리스 양이 많이 자랐구나 싶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면 하나씩 잊거나 추억으로 떠나보내곤 하니까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섭지만,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고,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기도, 꿈을 향해 나아가기도, 더 깊고 심도 있는 인간관계를 꾸려 살아가기도 하지요. 그렇게 나아갈 앨리스 양을 상상하면 어찌나 벅차오르는지 몰라요. 감기약을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휴대폰 시청을 금지당하고 엉엉 울던 앨리스 양이 어엿한 소녀가 된다니! 정말 사랑스러울 거예요. 저도 성숙한 소녀나 어른이 된 앨리스 양을 볼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